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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이영아의 여론 女論] 욕망에도 자격이 있을까?
이영아명지대 방목기초교육대학 교수“최의순은 원체 바탕이 미인인 데다가 걸음걸이 곱고 뒷맵시 고와서 양장도 어울리고 검정 치마 흰 저고리 받쳐 입으면 여학생풍으로도 어울리고 머리 쪽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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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이영아의 여론 女論] 역사는 명이 길다
이영아명지대 방목기초교육대학 교수 “새 학기를 앞두고 우리의 여자 교육계에 또 하나 명랑한 소식이 들려온다. 즉 부내 안국정에 있는 덕성여자실업학교는 오는 새 학기부터 새로운 설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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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이영아의 여론 女論] 장덕조의 신년소감
이영아 명지대 방목기초교육대 교수 “나 자신-인간으로서의 나 자신을 생각하고 인간으로서의 아이들을 생각할 때 어느 때가 되어야 완성될, 아니 조금이라도 완성에 가까워질까 하는 괴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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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이영아의 여론 女論] 고문의 기억
이영아명지대 방목기초교육대학 교수 3·1운동에 참여했던 여학생들이 출옥 후, 일제의 야만적인 행위를 폭로했다. 그녀들에게 가해진 일제경찰들의 고문에 대한 기록을 보면 그 내용이 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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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이영아의 여론 女論] 토론할 줄 아는 여자사람, 나혜석
이영아명지대 방목기초교육대학 교수 한국의 제1세대 신여성의 대표 인물 나혜석(羅蕙錫)은 진명여보고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도쿄여자미술전문학교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학식, 재능, 미모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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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이영아의 여론 女論] 단체를 해산시킨다는 것
이영아명지대 방목기초교육대학 교수 허정숙, 정종명, 방신영, 김수준…. 그동안 이 칼럼에서 거론된 이 여성인물들이 공통적으로 몸담은 단체가 있는데 근우회(槿友會)가 바로 그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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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이영아의 여론 女論] 허정숙에게 남은 가정폭력의 상처
이영아 명지대 방목기초교육대학 교수 “허O숙--그를 아는 이는 그의 양미간에 상처가 있는 것을 용이하게 발견할 수 있다.(…)몇 해 전에 그가 자기의 남편 되었던 모씨와 사랑이 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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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이영아의 여론 女論] 낙태를 원하는 여성은 없다
이영아명지대 방목기초교육대학 교수 한국에서 처음으로 출산율을 낮추는 문제를 논의한 것은 1930년대 초반이다. 다산(多産)이 곧 풍요를 의미했던 전통적인 관념은 경제적인 빈곤 완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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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이영아의 여론 女論] 조선 농촌 지켜준 부호 왕재덕
이영아명지대 방목기초교육대학 교수 1934년 6월 17일 한 70대의 노부인이 별세했다는 소식이 각 신문 1면에 대서특필되었다. 며칠 동안 신문들은 그녀의 일대기를 소개하고 추도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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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이영아의 여론 女論] ‘여류 작가’ 아닌 그냥 작가 되려 했던 임순득
이영아명지대 방목기초교육대학 교수 “내가 얼떨결에 작가라는 딱지를 붙이게 됐을 때만도 별 감동도 별 야심도 없었지만 단 하나 여류 작가는 안 되리라. 어떡하든 그냥 작가가 돼 보리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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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이영아의 여론 女論] 김성실, 조금 ‘다른’ 눈으로 세상을 보다
이영아명지대 방목기초교육대학 교수 1930년 중외일보에는 3월 21일과 22일에 걸쳐 김성실(金誠實)이라는 한 이화여전 졸업생의 인터뷰 기사가 실렸다. 기사의 제목은 ‘보지도 못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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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이영아의 여론 女論] 여성의, 여성에 의한, 여성을 위한 소비를 -김수준
이영아명지대 방목기초교육대학 교수 “분 바르고 연지 찍던 얼굴에 검은 숯칠을 하고 행주치마 걷어붙이고서 계급투쟁선상에 용감하게 뛰어나선 묘령 꽃 같은 100여 명의 처녀와 각시!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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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이영아의 여론 女論] 홍옥임의 자살이 동성애 때문일까?
이영아명지대 방목기초 교육대학 교수 세브란스 의전 교수 홍석후의 딸이자 음악가 홍난파의 조카인 홍옥임(洪玉姙)은 1931년 4월 19살의 나이로 철로에 몸을 던졌다. 그녀의 동덕여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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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이영아의 여론 女論] 성폭행의 상처를 홀로 견뎌야 했던 김명순
이영아명지대방목기초교육대학 교수 “연실이는 문득 선생의 숨소리가 괴상해져 가는 것을 들었다. 연실이는 눈을 들어 선생의 얼굴을 쳐다보았다. 아까도 선생이 술 먹은 줄은 몰랐는데 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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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이영아의 여론 女論] 최초 여성 경제학사, 선정적 염문 속에 28세로 요절하다
이영아명지대 방목기초교육대학 교수 1931년 11월 최영숙(崔英淑)은 ‘금의환향’했다. 근 10년 만의 귀국이었다. 여주에서 포목상을 하던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난 그녀는 1923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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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이영아의 여론 女論] 조선의 운명을 농촌에서 개척하고자 한 황애시덕
이영아명지대 방목기초교육대학 교수 1930년 가을 황해도 수안의 산골 깊은 곳에 옥색 양산을 한 손에 쥐고 한 손엔 도면을 쥔 두 명의 신여성이 나타났다. 여성운동가 황애시덕(黃愛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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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이영아의 여론 女論] 조국 독립을 위해 폭탄을 든 임신부, 안경신
이영아명지대 방목기초교육대학 교수 1920년 8월 3일 밤 11시쯤, 평양 성내에서 굉음이 들려왔다. 평남도청 신축 건물에서 들려오는 폭발음이었다. 마침 야시장이 열려 시내에 수많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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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이영아의 여론 女論] 김수임의 발칙한(?) 여름휴가 상상
이영아명지대 방목기초교육대학 교수 1937년 여름 특집으로 잡지에 ‘여류제씨의 소하법(銷夏法)’(‘여성’, 1937.8)이라는 제목의 글이 실렸다. 김활란(金活蘭·이화여전), 윤성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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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이영아의 여론 女論] 벨기에 청년, 한국 최초 여성 올림픽 대표선수에게 편지를 보내다
이영아명지대 방목기초교육대학 교수 “여자가 저 혼자이기 때문에 좀 섭섭해요. 앞으로는 이런 대회에 우리 조선 여성도 많이 참가하도록 해주기를 미리 부탁해요. 그러나 오빠선수들이 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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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이영아의 여론 女論] 권순옥의 세 남자, 이상, 정인택, 박태원
이영아명지대 방목기초교육대학 교수 “나와 순영이 송군 방 미닫이를 열었을 때 자살하고 싶은 송군의 고민은 사실화하여 우리들 눈앞에 놓여져 있었다. 아로날 서른여섯 개의 공동(空洞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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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이영아의 여론 女論] 1930년대 ‘골드 미스’ 약제사, 정영숙
이영아명지대방목기초교육대학 교수 “정영숙씨. 경북 풍기 산(産)이다. 일찍이 배화여고를 졸업하고 경성약학전문학교를 마친 후 강릉 도립병원약국에 근무하였다. 씨는 본래 관후한 경상북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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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이영아의 여론 女論] 가난을 부끄러워하지 않은 배우, 문예봉
이영아명지대 방목기초교육대학 교수 1936년 9월, ‘모로코’(1930), ‘푸른 천사’(1930), ‘아메리카의 비극’(1931) 등의 영화를 만든 30년대 미국의 영화감독 스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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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이영아의 여론 女論] 춤에 대한 열정 하나로, 진수방
이영아명지대 방목기초교육대학 교수 진수방(陳壽芳·1921~95)은 경성의 의사 집안의 딸로 태어나 유복한 유년시절을 보냈다. 경성사범부속보통학교에 다니던 어린 시절부터 춤에 남다른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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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이영아의 여론 女論] 조선의 ‘진짜’ 의사였던 여성, 유영준
이영아명지대 방목기초교육대학 교수 유영준(劉英俊·1892~?)은 고향 평양에서 영리하고 변재(辯才)가 있으며 한문에 능한 여학생으로 유명했다. 차상찬(車相瓚)은 그녀에 대한 소문을